영화 매드 위민스 볼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닌 19세기 프랑스 사회 속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를 자세하고 섬세하게 들여다 보는 작품으로 영화를보며 그 당시 프랑스의 사회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영화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자유롭지 못한 그때 그 시절의 여성들 자유를 꿈꾸는 주인공에게 집중하며 이영화의 줄거리, 프랑스의 사회적 배경, 숨은 의미를 포스팅 해보려고한다.
매드 위민스 볼 영화 줄거리
영화는 1885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젊은 여성 외제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외제니는 교양 있고 지적인 상류층 여성이지만, 그녀의 ‘보통과 다른’ 감각은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외제니의 능력을 정신 질환으로 간주하고, 결국 그녀를 살페트리에르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다. 이 병원은 여성 환자들을 수용하는 신경정신병원으로, 당시로선 ‘히스테리’라는 진단이 남성 의사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처럼 사용되던 시대였다. 외제니는 병원 안에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여성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간호사 제네비에브다. 그녀는 처음엔 병원의 질서를 충실히 따르며 환자들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외제니와의 관계를 통해 점차 의심과 흔들림을 느낀다. 특히 그녀의 가족사—자신의 여동생이 병으로 죽은 후의 상처—는 외제니와의 유대감을 더욱 깊게 만든다. 결국 두 사람은 병원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외제니는 자유를 찾아 병원을 탈출하게 된다. 영화는 단순한 탈출극이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사회적 배경
이 영화의 배경인 19세기 말 프랑스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제도적으로 정당화되던 시대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히스테리’라는 진단이다. 당시 의학계는 여성의 감정적 동요나 설명되지 않는 행동을 모두 이 병으로 분류했고, 이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을 통제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도구로 작용했다. ‘살페트리에르 병원’은 실제로 존재했던 병원이었으며, 신경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샤르코 박사가 이곳에서 환자들에게 최면을 시도하고, 의학적 쇼처럼 공개 강의를 진행하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당시 상류층 남성들은 ‘미친 여자들’의 무도회를 보러 병원에 방문했고, 병원은 이를 하나의 문화 행사처럼 치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광녀들의 무도회'는 단지 연출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무도회는 환자들에게 위안을 준다는 명목으로 열렸지만, 실상은 사회가 여성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방식이었다. 여성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감정과 감각은 의심받았으며,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외제니처럼 자신의 감각이나 신념을 표현하려는 여성은 곧장 ‘정신 이상자’로 간주되었다.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차별의 구조를 직시하게 만든다. 결국 이 배경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여성 억압의 구조와도 연결되어 있어, 지금의 관객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숨은 의미
매드 위민스 볼이 단순히 “여성이 억압받던 시대”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은 울림을 주는 건 그 안에 숨겨진 상징과 의미들 덕분이다. 외제니가 가진 ‘죽은 자의 영혼을 보는 능력’은 단지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기존 사회가 외면하고 무시했던 감각, 직관, 그리고 감정의 메타포로 읽을 수 있다. 그녀는 타인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런 ‘감각’이야말로 공동체에서 배제되어야 할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설정은 단지 시대적 상황만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조차 ‘다른’ 사람들을 향한 편견과 억압을 떠올리게 한다. 제네비에브 역시 초기엔 질서를 수호하는 존재였지만, 외제니를 통해 억눌려 있던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마주하게 되면서 변화한다. 이는 감정과 이성, 질서와 혼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이 얼마나 위태로운 경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무도회라는 형식 자체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겉으로는 치유와 해방의 장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회적 위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공간이다. 예쁘게 치장한 환자들이 상류층의 시선 아래 공연하듯 존재해야 하는 이 공간은, 자유를 가장한 감금이며, 공감보다는 구경을 허락받은 장이다. 영화는 이런 설정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결국 매드 위민스 볼은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진다. 여성은 어떻게 자신의 감각을 말할 수 있는가, 사회는 무엇을 ‘정상’이라 규정하고 그 외의 것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이 영화는 묵직한 울림을 남기며, 우리가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조용히 끌어올린다.